단장주교의 12월 사목서간

며칠 전 선종하신 에체바리아 주교가 보내신 마지막 사목 서간이다.

사목 서간
Opus Dei - 단장주교의 12월 사목서간

주님께서 사랑하는 모든 자녀들을 잘 보살펴 주시기를 원합니다!

온 세상에 영향을 끼친 자비의 해가 끝나고 우리는 지금 교회 전례력 상 새해인 대림절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우리의 시선을 서둘러 하느님께 돌리라고 격려합니다. 이러한 충고는 항상 적절한 때가 있는 것이고 지금이 바로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면서 맞이하는 적절한 시간입니다.

우리의 마음 안에는 말씀이 새겨져 있습니다. Domine, et noli tardare [1] 오소서 주님, 어서 오소서. 이 말씀은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들 안에서 각인되어야 합니다. 기쁨과 평화 그리고 세상이 끝날 때 영광스럽게 다시 오실 그 분을 기다리며 지구상에 태어나신 곳 베들레헴을 기억하면서 우리는 시선을 그리스도에게 향하도록 초대를 받았습니다. 이러한 노력을 게을리 한다면, 우리는 일상 직업 안에서 그날이 그날인 단조로운 연속의 날을 맞이하게 될 것이고 심지어는 지루하고 재미없는, 주님의 기대에 못 미치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교회의 외침입니다. 오소서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님! 베르나르도 성인께서는 대림절 첫 번째와 마지막 주일 사이에 그리스도께서 오신다고(an intermediary coming of Christ)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존재 전체를 의미합니다. 그분께서 대림절 중간에 오신다는 것은 우리의 길을 처음부터 끝까지 이끌어 가는 의미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오신다는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를 이끌어 주시고 또한 우리 구원을 위한 것입니다. 그 분은 우리의 마지막 시간에도 다시 오시고 안식을 주시는 위로자 이십니다.” [2]

눈앞에 다가온 베들레헴에서의 예수님 탄생을 준비하면서 매 순간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어떻게 다가오시는지 깨달으라고 대림절은 우리에게 격려의 말을 건넵니다. 그분께서는 성사 안에서, 특별히 회개와 성체성사, 기도와 자비의 일들 안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어제와 내일이 아닌 지금 이 순간에 “깨어서! 주님께서 오시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분은 우리와 우리 역사를 주목하지 않는 하늘에만 계시는 분이 아니고, 우리에게 오시는 한 분이신 주님이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느님이십니다.”[3]

이러한 기다림의 날들은 우리를 성모님과 요셉성인께 더욱 가까이 다가가게 해 줍니다. 시메온과 안나, 구약에 등장하는 모든 의인들도 메시아가 오시는 것을 학수 고대 했습니다. 구원의 역사 안에서 드러난, 우리가 동경하는 것들을 하느님 마음으로 곰곰이 생각해 봅시다(그분의 기쁨은 사람의 자녀들과 함께 하는 것이다[4]). 성모님과 요셉성인께서 하느님 아들의 탄생을 얼마나 큰 열망으로 기다렸을까를 묵상하면서, 우리의 시선을 더 자주 그분들께 향하도록 합시다. 천상의 현상이 진행되는 대림절 동안 그분들의 대화가 예수님을 중심으로 어떻게 진행되었을지 우리도 자신을 되돌아 봅시다. 시의 적절한 호세마리아 성인의 말씀이 여기에 있습니다. “기쁨으로 마리아와 요셉의 친구가 되어 드립니다 그리고 당신은 다윗 가문의 전통을 듣게 될 것입니다. 엘리자벳과 즈카리야에 관해서도 듣게 될 것입니다. 요셉의 순수한 사랑은 당신의 마음을 움직이게 할 것입니다. 그들이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아기에게 관심을 가질 때 마다 당신의 가슴은 쿵쿵 뛰게 될 것입니다.” [5] 삼종기도를 드릴 때마다 더 큰 사랑과 애착을 가지고 기도 드리길 제안합니다.

요즘 세상은 복잡하고 흥미진진합니다. 주위는 온갖 북새통으로 우리를 위험으로 끌어들입니다. 그러한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와 아주 가까이 계신다는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신을 온전히 내어 놓으십니다 그래서 그분께서도 우리에게 많은 것을 요청하시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이 사실을 잘 모른다는 것은 하느님 사랑을 잘 못 이해하고 있다는 뜻 입니다.

그러나 특이하거나 예외적인 상황은 상상하지 맙시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그리스도인에 걸맞게 일상적인 의무를 더욱 정제된 노력으로 하길 원하십니다. 그래서 나는 여러분이 대림절 동안 (많은 나라에서 크리스마스를 외형적으로만 준비) 여러분 자신들에게는 하느님께 가까워지는 최고의 기억을 남기도록 하고 또 다른 사람들을 너그러움과 즐거움으로 섬기기를 제안합니다. 쇼핑 (또는 사회적인 안전 망 부족으로 인한 경제적인 어려움), 전쟁, 자연재해 등으로 사람들이 여기저기로 이동하는 상황에서도, 주님께서는 항상 우리 모두를 돌보고 계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마음의 평화를 얻을 것입니다. 곧 오시는 주님께로 우리의 시선을 돌립시다. 몇 주일 전 교황님께서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의 말씀을 인용하셨습니다. “저는 제가 기억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주님께서 지나쳐 버리실까 봐 두렵습니다. 저는 그분이 주님이시다 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채, 가난한 사람 안에 계시는 주님께서 제 앞을 지나쳐 버리실까 봐 두렵습니다.” [6]

아기 예수님께서 여관에 잘 오시도록 환영의 준비를 하는 동안, 특별히 하느님과의 관계가 따뜻해지고 더욱 긴밀해지도록 우리의 세심한 작은 정성을 드립시다. 예를 들어 삼위일체께서 우리를 환영하시고 십자가로 구원받았음을 잘 알고 있다는 표현으로 천천히 성호를 긋는다든지, 식사 때에 감사와 축복의 기도를 드리는 것, “감실 안의 반복적인 예수님 탄생장면”[7] 앞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들은 우리의 작은 정성이 될 것입니다. 12월초에 맞이하게 될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님의 축일을 준비하는 동안에 진실하고 살아있는 확고한 믿음과 미소로 우리의 어머니이신 성모님께 인사 드리는 것입니다. 삶이 무미건조한 날에도 성모님께서는 과달루페의 후안 디에고 성인에게 발현하시어 주신 꽃 향기를 우리가 가는 길에도 가져다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보너스로 예수님의 향기[8], “그리스도의 향기”도 채워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12월 12일에 과달루페의 동정마리아 축일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12월 17일부터는 예수님에 대한 기다림이 성스러운 조금함(holy impatience)의 양상을 띄게 될 것입니다. 조금만 있으면 오실 이가 오시리라, 지체하지 않으시리라, 그분은 우리의 구원자이시기 때문에 어떠한 두려움도 없으리라 [9] “그리스도가 탄생했다는 말씀을 들으면 조용히 아기예수의 말씀도 들으려 노력합시다. 그 분의 말씀을 마음속에 간직하면서 넋을 잃고 그 분의 얼굴을 한번 바라봅시다. 그분을 우리의 팔에 안을 때 우리자신이 그분 안에 안기어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끝없는 평화를 가져다 주실 것입니다. 그 아기는 우리에게 무엇이 우리 삶의 핵심인지를 가르쳐 줄 것입니다. 그분은 이 세상에 가난하게 태어났습니다. 그분과 가족을 위한 여관 방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분은 마구간에서 거처할 공간을 찾았고 동물의 먹이통에 뉘어졌습니다. 지금 이순간, 보잘것없는 이곳에서 하느님의 빛이 영광스럽게 비추어 나가고 있습니다.” [10]

우리가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베들레헴 마구간의 고요함과 기쁜 분위기의 모습을 지니게 될 때, 우리 주위로부터 성숙한 열매가 되어 즉, 더욱 강렬하게 기쁨이 넘치는 가족으로 축제의 날들과 하나되어, 퍼져나갈 것 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우리에게 중요하지 않는 것들, 우리의 마음을 산란하게 하는 것들, 수박 겉 핥기 식의 것들은 은 뒤로하고, 대림절 동안 더 좋은 내적 준비를 하라고 충고합니다. 아마도 우리는 여러 가지 생각해야 할 일들이 많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평화가 부족할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하느님과 함께 평화안에서 고요하게 머물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이것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크리스마스 축제기간 동안에 가족간에 친밀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언쟁 또는 화를 내거나 조급함 또는 경거망동을 보여서는 안 되고, 즐겁게 쉬고 기도하면서 함께 좋은 시간을 보내는 것입니다. 편견을 바로잡고 마음 안에 품은 작은 억울함을 해소해 가는 것들 입니다.

좋은 의도로 자비를 실천했지만, 그것에 방해되는 공격을 받는다 해도 우려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우리는 그것들을 거절하는 데 필요한 초자연적, 인간적인 의연함을 갖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이 가끔 산만해지기도 하지만 예수님 탄생장면 앞에서 기도하면서,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거처하실 공간”을 참을성 있게 새로이 만들어 갑시다. 호세마리아 성인께서는 이와 비슷한 상황에 처하여 주님 앞에 잠깐 머무는 동안 자신을 바라보면서 낙담하지 않으셨다고 기억해내셨습니다. 1931년에 그분께서 쓰신 내용입니다 “나는 불쌍한 특성을 지닌 당나귀를 잘 압니다. 그가 만약 베들레헴에서 한 마리의 황소 옆에 있었다면 창조주를 겸허하게 흠모하는 대신 구유 안의 먹이를 먹어 치웠을 것입니다.”[11] 그리스도인들이 전통에 따라 예수님의 탄생장면을 장식하는 것들이 많은 나라에 널리 퍼져 있는 것을 보면 기쁨으로 가득 찹니다.

이 기간 동안 우리는 자신이 첫 번째 수혜자라는 걸 기억하면서, 홀로 지내는 사람이나 어떻게든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기억하는 걸 잊지 마십시오. 이러한 생각을 친척이나 친구, 이웃, 동료들에게 널리 알리십시오. 많은 것들 중에서,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제스처는 믿음의 일을 행하는 것입니다, 가령 노숙인 들을 찾아가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제공하는 것일 수도 있고 또한 다른 사람들을 돌보는데 종사하는 사람에게도 말입니다.

서간을 마치기 전, 11월 7일 청중 앞에서 저에게 보여주신 애정 그리고 성직자들을 축복 해주신 교황님께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다가오는 크리스마스와 함께 그리스도에 대한 확고한 믿음으로 교황님과 교황님의 지향을 위하여, 교회에 풍성한 선물이 쏟아지도록 그리고 온 세계를 위하여 지속적인 기도를 드립시다.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님께 드리는 9일 기도를 바치는 동안, 자녀로서의 신뢰(filial trust)를 가지고 성모님과 함께 동반합시다. 우리를 예수님과 직면하게 해주시는, 이러한 훌륭한 어머니의 자녀 됨을 자랑스러이 여겨야 한다고 호세마리아 성인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우리가 아픈 사람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 가도록 힘을 주는 원동력이 되어줄 것입니다. 우리의 일 안에서 첫 번째 크리스마스를 맞이했을 때 우리의 창설자 성인께서 아버지와 같은 애정으로 가까이서 우리를 동반해 주셨던 것처럼 중재해 주시도록 성인께 청하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그 때엔 오직 하느님과, 성모님 그리고 요셉 성인과 몇 명의 자녀들만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애정 어린 강복과 함께 더 자주 성실한 기도를 드리길 청합니다.

여러분의 아버지

+ 하비에르

[1] Liturgy of the Hours, Evening Prayer I for the First of Advent.

[2] Saint Bernard, Discourse 5 on Advent, 1(Liturgy of the Hours, Wednesday of the First Week of Advent, second reading).

[3] Benedict XVI, Homily, December 2, 2006.

[4] See Prov 8:31 (Vulg).

[5] Saint Josemaria, Holy Rosary, second joyful mystery.

[6] Pope Francis, Address to a general audience, October 12, 2016 (see Saint Augustine, Sermon 88, 14, 13).

[7] Saint Josemaria, (AGP, sec. A, leg. 3, fold. 3), cited in The Way, Critical-Historical Edition (Pedro Rodriguez, ed.), Scepter (U.K.) 2009. Commentary on point 998.

[8] 2 Cor 2:15.

[9] Roman Missal, December 19, Entrance Antiphon (see Heb 10:37).

[10] Pope Francis, Homily, December 24, 2015.

[11] Saint Josemaria, Apuntes intimos, no. 181 (March 25, 1931). Cited in J.L. Soria, “Maestro de buen humor,” Rialp, 3rd ed., Mardrid, 1994, p. 91.